가톨릭 성인으로 추대 받은 마더 테레사의 어두운 이면
마더 테레사는 2016년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되었지만, 그녀의 행동과 결정에 대한 비판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빈자의 성녀"라는 칭송 뒤에는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막대한 기부금을 불투명하게 운영하며, 독재자들과 유착했다는 주장이 있다. 과연 그녀는 성인인가, 아니면 고통을 방치한 사이코패스에 가까웠는가? 아래에서는 마더 테레사의 어두운 이면을 살펴본다.
마더 테레사가 1952년에 설립한 인도 콜카타의 '죽어가는 이들의 집'은 거리에서 죽어가는 빈민들을 돌보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의료적 처치가 극도로 부족했다. 1994년 영국 의학저널의 편집장 로빈 폭스는 이 시설을 방문한 후 의료 돌봄이 "즉흥적"이며 엉성하다고 평가했다. 의사의 참여 없이 의료 지식이 부족한 수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임의로 진료를 결정했으며, 말라리아 환자에게 해열제와 항생제를 투여하는 등 오진이 빈번했다. 폭스는 이러한 상황이 신의 섭리에 의존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통증 완화조차 외면한 점이다. 폭스는 강한 진통제가 전혀 구비되어 있지 않아 말기 암 환자들이 아스피린만 받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1990년대 중반 이곳에서 봉사했던 메리 라우든은 비위생적이고 비과학적인 환경을 목격했으며, 한 15세 소년 환자는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마더 테레사는 환자들이 "천사처럼 사랑받으며 죽을 수 있게" 돕는다고 했지만, 많은 환자들은 최소한의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임종을 맞았다.
마더 테레사의 고통에 대한 철학은 그녀의 의료적 도움 소홀의 배경이 되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아픈 이들의 고통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이를 그리스도의 수난과 연결지었다. 그녀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환자들에게 고통의 의미를 설득하라고 지시했으며, 말기 통증 환자에게조차 모르핀을 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더 테레사는 자신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최고 수준의 유럽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녀의 시설에서는 항생제만 투여하면 나을 병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자신의 고통은 적극적으로 덜었던 이중적 태도는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고통을 신의 선물로 여긴다면서 자신의 고통은 외면한 그녀의 모습은 성인으로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마더 테레사는 전 세계에서 막대한 기부금을 모은 자선사업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 돈이 실제로 빈민을 위해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1991년 독일의 시사 잡지 슈테른(Stern)의 조사에 따르면, 그녀의 자선단체가 모금한 돈의 단 7%만이 빈민 구호에 쓰였고, 나머지는 바티칸이 관리하며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매년 1억 달러가 넘는 기부금이 들어왔지만, 그 사용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고, 인도 법규를 무시한 채 비공식적으로 운영되었다.
마더 테레사는 자신의 신념을 절대시하며 독선적인 태도로 자선사업을 이끌었다. 그녀의 시설에서는 임종 환자에게 몰래 가톨릭식 세례를 주는 일이 빈번했으며, 피임과 낙태에 대한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태도는 빈민의 현실적 고통을 외면하고,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비판받았다. 그녀의 조직은 외부의 조언을 무시하고 비밀주의로 일관하며, 권위주의적인 운영 방식을 고수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녀가 독재자들과의 유착을 통해 기부금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1981년 아이티의 독재자 장클로드 뒤발리에로부터 훈장을 받으며 그를 "가난한 이들의 진정한 친구"라고 칭송했으며, 사기범 찰스 키팅으로부터도 100만 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받았다. 이러한 행태는 그녀의 도덕적 진정성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며, 성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재고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마더 테레사의 복잡하고 어두운 이면은 단순한 이타적 성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인간의 고통을 무시하는 냉혹함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