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성을 망각한 언론의 '선종' 보도: 그 문제는 명확히 지적되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거 소식에 접하며, 국내 주요 언론 매체들이 일제히 '선종(善終)'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깊이 우려스러운 지점입니다. 이는 겉으로는 경건한 존중의 표현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언론이 이러한 특정 종교 용어를 비판적 검토 없이 수용한 것은 그 자체로 부적절하며 문제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분명히 밝히건대, '선종'은 단순히 "편안히 숨을 거두었다"는 중립적인 의미의 단어가 아닙니다. 이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 교리를 전제로 하는 매우 특수하고 종교적인 용어입니다. 가톨릭 교리에서 선종은 임종에 앞서 고해성사와 병자성사 등의 종교 의례를 거치고, 영혼에 어떠한 큰 죄(대죄)도 없는 상태에서 삶을 마쳤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다시 말해, 마지막 순간에 모든 종교적 의무를 다하고 하느님 앞에 합당하게 떠났다는 신앙적 확신과 판단이 강력하게 담긴 표현입니다.
세속 언론이 이처럼 특정 종교 공동체 내부에서 통용되는 용어를 어떠한 설명이나 맥락 제시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이는 언론이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본분을 망각하고, 특정 종교의 교리적 판단을 슬그머니 끼워 넣어 마치 보편적인 진실인 양 포장하는 행위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선종'이라고 기술하는 순간, 가톨릭 교회의 신앙적 해석이 객관적인 사실처럼 둔갑하여 독자들에게 전달됩니다. 이것은 언어를 통해 특정 종교에 불필요한 특권을 부여하는 행위이며, 언론이 반드시 지켜야 할 보편성과 중립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어떤 이의 죽음이든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교황이든 일반 시민이든, 죽음 앞에서는 모두 동등한 한 사람의 인간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언론이 그의 죽음을 '선종'과 같은 특정 종교의 용어로 미화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현실을 종교적 수사로 왜곡하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존경받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입니다. 이를 특별하거나 성스러운 사건처럼 포장하는 것은 진실을 가리는 시도이며, 특정 권위나 신념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언론의 태도는 명백한 언어적 위선입니다. 겉으로는 객관적 보도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특정 종교의 강력한 권위 앞에서는 비판 없이 그들의 언어를 차용하며 굴복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선종'이라는 용어의 사용 또한 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특정 종교 공동체 내부에서만 의미 있는 표현을 공적인 뉴스 기사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언론 스스로가 특정 종교의 대변자나 선전 매체가 되기를 자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언론이 교황에 대한 존경과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음을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공적인 영역에서의 표현마저 특정 종교의 신념에 기대야 한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존경하는 인물의 죽음을 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중립적이고 품위 있는 단어는 '서거', '별세' 등 얼마든지 충분합니다. 굳이 "하느님 나라로 돌아갔다"와 같은 특정 종교의 신앙적 확언을 빌리지 않아도 애도의 뜻을 전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세속 사회의 언론이라면, 공적인 언어 사용에 있어서는 엄격하게 세속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해야만 합니다. 종교 자체를 존중하는 것과 언어 사용 영역에서 특정 종교에 특혜를 부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교황은 최종적으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생을 마쳤습니다. 언론은 그 사실을 오직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전달하면 충분합니다. 신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미화하거나, 특정 종교의 권위에 기대어 특별한 대우를 할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습니다.
언론의 사명은 오직 진실을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특정 종교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전령이 아닙니다. '선종'이라는 단어에 은연중에 스며든 종교 권력과 신앙의 편향성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이러한 행태는 이제 반드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언론이 진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의 죽음 앞에서도 오직 객관적인 사실과 중립적인 세속 언어로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독자와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책무이자, 언론 스스로 지켜야 할 마지막 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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